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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늦가을이라기 보다는 초겨울이라는 말이 더 정확하긴 할듯. 간간히 눈이 오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영하로 떨어지는 것도 다반사, 슬슬 가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나뭇잎이 붙어있으니, 전 가을이라고 우기고 싶습니다. 늦가을 풍경 사진도 찍어두고 싶고, 이미지도 만들어두고 싶은데, 그게 참 쉽지 않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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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생각난 김에, 더 겨울이 다가오기 전에 가을을 마무리 하고자 하는 의미로, 그동안 차곡 차곡 모아운 늦가을 시 모음을 올려봅니다. 가을이며, 낙엽이며 그리고 단풍에 대한 쓸쓸함이 살아있는 시이기도 하지요.


 

 


 


가을 - 김광섭

가을 빗소리
창을 울린다

나는
어데서 굴러온
누른 잎사귀뇨        

 

 


 


'가 을'
                  - 강은교

기쁨을 따라갔네
작은 오두막이었네
슬픔과 둘이 살고 있었네
슬픔이 집을 비울 때는 기쁨이 집을 지킨다고 하였네
어느 하루 찬바람 불던 날 살짝 가보았네
작은 마당에는 붉은 감 매달린 나무 한그루 서성서성
뒤에 있는 산, 날개를 펴고 있었네
산이 말했네.
어서 가보게, 그대의 집으로

 

 


 

 

 

 


'가 을'
                     - 김광림

고쳐 바른 단청빛 하늘이다
경내는 쓰는 대로 보리수 잎사귀 한창이다
잎줄기에서 맺혀 나온 염주알 후두둑 떨어진다
벼랑 위에 나붓이 앉으신 참 당신 보인다

 

 


 

 

'가 을'
              - 김용택

가을입니다
해질녘 먼 들 어스름이
내 눈 안에 들어섰습니다
윗녘 아랫녘 온들녘이 모구
샛노랗게 눈물겹습니다

말로 글로 다할 수 없는
내 가슴 속의 눈물겨운 인정과
사랑의 정감들을 당신은 아시는지요

해지는 풀섶에서 우는
풀벌레들 울음소리 따라
길이 살아나고 먼 들 끝에서 살아나는
불빛을 찾았습니다

내가 가고 해가 가고
꽃이 피는 작은 흙길에서

저녁 이슬들이 내 발등을 적시는
이 아름다운 가을 서정을
당신께 드립니다

 

 


 

 


'가 을'
                     - 김종길

먼 산이 한결 가까이 다가선다
사물의 명암과 윤곽이 더욱 또렷해진다
가을이다

아 내삶이 맞는 또 한 번의 가을!

허나 더욱 성글어지는 내 머리칼
더욱 엷어지는 내 그림자 해가 많이 짧아졌다

 

 


 

 

 

     '가 을'
                       - 김현승(1913-1975) 광주.

봄은 가까운 땅에서 숨결과 같이 일더니
가을은 머나먼 하늘에서 차가운 물결과 같이 밀려온다
꽃잎을 이겨 살을 빚던 봄과는 달리
별을 생각으로 깎고 다듬어
가을은 내 마음의 보석을 만든다

가을은 눈동자 먼 봄이라면 입술을 다문 가을
봄은 언어 가운데서 네 노래를 고르더니
가을은 네 노래를 헤치고 내 언어의 뼈마디를
이 고요한 밤에 고른다
   김현승 시선집> 관동출판사. 1974년

 

 


 



'가 을'
                - 드라메어

장미 피었던 곳에 거친 바람 불고
향긋한 풀 무성했던 곳에 찬비 내리고
종달새 즐거이 지저귀던
회색빛 하늘 가파른 곳엔
구름만이 양떼되어 흐른다

너의 머리카락 있던 곳에서 황금빛 찾을 길 없고
너의 손길 있던 곳에선 따스함이 사라진지 오래구나
너의 얼굴을 바라보던 장미 덩굴 아래엔
서글픈 환상만이 너의 망령을 불러들일 뿐이다

너의 목소리 들리던 곳엔 차가운 바람만 스산하고
나의 마음 깃들었던 곳엔 방울방울 눈물이 고인다
또한 한때는 희망이 있던 내 가슴엔
이제는 항상 침묵이 있을 뿐이란다
나의 그리운 사랑아

 

 



'가 을'
            - 릴케(1875-1926)

나뭇잎이 떨어진다, 하늘나라 먼 정원이 시든 듯
저기 아득한 곳에서 떨어진다
거부하는 몸짓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밤마다 무거운 대지다
모든 별들로부터 고독 속으로 떨어진다

우리 모두가 떨어진다 여기 이 손도 떨어진다
다른 것들을 보라 떨어짐은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이 떨어짐을 한없이 부드럽게
두 손으로 받아내는 어느 한 분이 있다

 


 

'가 을'
                - 마종기

가벼워진다
바람이 가벼워진다
몸이 가벼워진다

이곳에
열매들이 무겁게 무겁게
제 무게대로 엉겨서 땅에 떨어진다

오, 이와도 같이
사랑도, 미움도, 인생도, 제 나름대로 익어서
어디로인지 사라져간다

 

 



'가  을'
                  - 문인수

여러 번 붉게 큰물 지고 나서
어느 날은 차디차게 발목에 감기는

가을

하늘에다가는 달게 감홍시 하나 남겨 놓듯이
누군가는 또 한나절 땅에다가는
그러나 그랬달 것도 없이
어느 날은 넌지시 징검다리 놓이는

 


 

 


'가 을'
                          - 박경리

방이 아무도 없는 사거리 같다
뭣이 어떻게 빠져 나간 걸까
솜털같이 노니는 문살의 햇빛

조약돌 타고 흐르는 물소리
나는 모른다, 나는 모른다, 그러고 있다
세월 밖으로 내가 쫓겨난 걸까

창밖의 저만큼 보인다
칡넝쿨이 붕대같이 감아 올리자 나무 한 그루
같이 살자는 건지 숨통을 막자는 건지

사방에서 숭숭 바람이 스며든다
낙엽을 말아 올리는 스산한 거리
담뱃불 끄고 일어선 사내가 떠나간다

막바지의 몸부림인가
이별의 포한인가
생명은 생명을 먹어야 하는

원죄로 인한 결실이여
아아 가을은 풍요로우면서도
참혹한 계절이다 이별의 계절이다

 


 

 '가 을'
            - 백남석 작사. 현제명 작곡

가을이라 가을 바람 솔솔 불어오니
푸른 잎은 붉은 치마 갈아입고서
남쪽나라 찾아가는 제비 불러모아
봄이 오면 다시 오라 부탁하노라

가을이라 가을 바람 솔솔 불어오니
밭에 익은 곡식들은 금빛이구나
추운 겨울 지낼 적에 우리 먹이려고
하나님이 내려주신 생명의 양식

 



 '가  을'
                 - 송찬호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이 가슴을 스치자,
깜짝 놀란 장끼가 넌너편 숲으로 날아가
껑, 껑, 우는 서러운 가을이었다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이 엉덩이를 때리자,
초경이 비친 계집애처럼 화들짝 놀란 노루가
찔끔 피 한방울 흘리며
맞은편 골짜기로 정신없이 달아나는 가을이었다

멧돼지 무리는 어제 그제 달밤에 뒹굴던 삼밭이 생각나,
외딴 콩밭쯤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지나치는 산비알 가을이었다

내년이면 이 콩밭도 묵정밭이 된다 하였다
허리 구부정한 콩밭 주인은 이제 산등성이
동그란 백도라지 무덤이 좋다 하였다
그리고 올 소출이 황두 두말 가웃은 된다고 빙긋이 웃었다

그나저나 아직 볕이 좋아
여직 도리깨를 맞지 않은 꼬투리들이
따닥따닥 제 깍지를 열어 콩알 몇 낱을 있는 힘껏
멀리 쏘아부치는 가을이었다

콩새야, 니 여태 거기서 머하고 있노
어여 콩알 주워가지 않구
다래넝쿨 위에 앉아 있던 콩새는
자신을 들킨 것이 부끄러워
꼭 콩새만한 가슴을 두근거리는 가을이었다
           
<현대시> 2008년 4월호 발표
            제8회 미당문학상 수상작

 


 

 

가을의 시 / 김초혜


묵은 그리움이
나를 흔든다

망망하게
허둥대던 세월이
다가선다

적막에 길들으니
안 보이던
내가 보이고

마음까지도 가릴 수 있는
무상이 나부낀다

 


 

 '가  을'
               -  유안진

이제는 사랑도 추억이 되어라

꽃내음보다는 마른 풀이 향기롭고
함께 걷던 길도 홀로 걷고 싶어라
침묵으로 말하며
눈 감은 채 고즈너기 그려보고 싶어라

어둠이 땅 속까지 적시기를 기다려
비로소 등불 하나 켜놓고 싶어라
서 있는 이들은 앉아야 할 때
앉아서 두 손 안에 얼굴 묻고 싶은 때

두 귀만 동굴처럼 길게 열리거라

 

 



 '가  을'
              - 윤희상

일하는 사무실의 창 밖으로
날마다 모과나무를 본다
날마다 보는 모과나무이지만
날마다 같은 모과나무가 아니다
모과 열매는 관리인이 따다가
주인집으로 가져가고
모과나무 밑으로 낙엽이 진다
나의 눈이
떨어지는 낙엽을 밟고
하늘로 올라간다
낙엽이 계단이다

 

 



'가 을'
                - 이안

병든 나뭇잎 먼저
더 많은 벌레를 먹인 나뭇잎 먼저
아픔이 먼저
아픔에게 문병 간다

 



 '가  을'
              -  정호승

돌아보지 마라
누구든 돌아보는 얼굴은 슬프다
돌아보지 마라
지리산 능선들이 손수건을 꺼내 운다
인생의 거지들이 지리산에 기대앉아
잠시 가을이 되고 있을 뿐
돌아보지 마라
아직 지리산이 된 사람은 없다

 

 



'가  을'
                  - 조병화

가을은 하늘에 우물을 판다
파란 물로
그리운 사람의 눈을 적시기 위하여
깊고 깊은 하늘의 우물
그곳에
어린 시절의 고향이 돈다
그립다는 거, 그건 차라리
절실한 생존 같은거
가을은 구름 밭에 파란 우물을 판다
그리운 얼굴을 비치기 위하여

 

 



가을에 아름다운 것들 / 정유찬


가을엔
너른 들판을 가로 질러
노을지는 곳으로
어둠이 오기 전까지
천천히 걸어 보리라

아무도 오지 않는
그늘진 구석 벤치에
어둠이 오고 가로등이 켜지면
그리움과 서러움이
노랗게 밀려 오기도 하고

단풍이
산기슭을 물들이면
붉어진 가슴은
쿵쿵 소리를 내며
고독 같은 설렘이 번지겠지

아, 가을이여!
낙엽이 쏟아지고 철새가 떠나며
슬픈 허전함이 가득한 계절일지라도
네게서 묻어오는 느낌은
온통 아름다운 것들뿐이네

 

 



    '가  을'
              - 최승자

세월만 가라, 가라 그랬죠
그런데 세월이 내게로 왔습니다
내 문간에 낙엽 한 잎 떨어뜨립디다
가을입디다

그리고 일진광풍처럼 몰아칩디다
오래 사모했던
그대 이름
오늘 내 문간에 기어이 휘몰아칩디다

 

 



 '가  을'
               - 헤 세

 

덤불 속 너희 새들
너희의 노래 얼마나 퍼덕이는지
누렇게 물드는 숲을 따라 ㅡ
너희 새들아, 서둘러라!

곧 온다 부는 바람이
곧 온다 베는 죽음이
곧 온다 무서운 유령이 그리고 웃는다
우리 가슴이 얼어붙도록
정원이 그 모든 호화로움을
또 삶이 그 모든 광채를 잃어버리도록

숲 속의 새들아
작은 형제들아
우리는 노래하자 즐겁자꾸나
머지 않아 우리는 먼지이다

 

 


  '가  을'
                  - 흄

가을 밤의 싸늘한 감촉 -
나는 밤을 거닐었다.
 
 
얼굴이 빨간 농부처럼
불그스름한 달이 울타리 너머로
굽어보고 있었다.
 
 
말은 걸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도회지 아이들같이 흰 얼굴로
별들은 생각에 잠기고 있었다.

 

 



가을편지 - 호인수

 


곱게 물든 나뭇잎 하나 주워

두 손에 감싸 들고

조심스레 입맞춥니다

아름다운 당신

우리는 꼭 이만큼 왔습니다

 

 



가을 첼로 - 정진규

 

가을 첼로는 해 지는 기인 능선을 지니고 있다 소리의 윤곽이 뚜렷하다 능선 위 서 있는 나무들의 각자가 보인다 그저 통주저음(通奏低音)으로만 젖던 제 슬픔을 비로소 가볍게 추스른다 처음처럼 슬픔의 모서리를 문지르는 손, 와서 닿는 살갗이 차끈하다 정신이 든다

 

 



가을이라는 물질 - 이기철


가을은 서늘한 물질이라는 생각이 나를 끌고 나무나라로 들어간다
잎들에는 광물 냄새가 난다
나뭇잎은 나무의 영혼이 담긴 접시다
접시들이 깨지지 않고 반짝이는 것은
나무의 영혼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햇빛이 금속처럼 내 몸을 만질 때 가을은 물질이 된다
나는 이 물질을 찍어 편지 쓴다
촉촉이 편지 쓰는 물질의 승화는 손의 계보에 편입된다
내 기다림은 붉거나 푸르다
내 발등 위에 광물질의 나뭇잎이 내려왔다는 기억만으로도
나는 한 해를 견딜 수 있다
그러나 너무 오만한 기억은 내 발자국을 어지럽힌다
낙엽은 가을이라는 물질 위에 쓴
나무의 유서다
나는 내 가을 시 한 편을 낙엽의 무덤 위에 놓아두고
흙 종이에 발자국을 찍으며 돌아온다


 


가을 국도변에는 잊혀진 것들이 모여 산다 - 고증식

 


낮은 처마 밑을 돌아 아스라이 저녁 연기 오르고
텅 빈 들녘을 달려가는 먼 옛날의 바람 소리
붉게 젖은 노을이 들풀들의 임종을 지켜주는 길섶에
아스팔트길을 질주해 온 남루한 생을 내려놓는다
세월 비껴간 자리에 서늘한 눈빛 머금고 선 상념들아
아직도 더운 김을 뿜어내며 씩씩거리는 욕망에 기대어
전설처럼 되살아오는 이별과 한숨과 잊혀져간 꿈들과
몰려가는 낙엽들을 따라 먼 산등성이를 바라 볼 뿐이다  

 

 


모아놓고 보니 늦가을 시 모음이 자그마치 27편인거 같네요. 늦가을 시 모음 제대로 한것 같네여. 여러분들에게 가을은 어떤 존재인가요? 저는 개인적으로 가을 겨울을 참 좋아해요. 예전에는 그렇게 몸이 따뜻한 편이라서 그렇게 겨울이 춥지 않았거든요.

 

나이가 들어서도 있지만, 중간 중간 제법 크게 아팠던 탓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래도 아직 이런 감수성 예민한 나이기에 가을, 겨울이 좋은것 같네요.  올려놓은 시 보시고 멋진 가을의 하루하루르 즐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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